▲ 크기 : 12cm X 30cm(높이)
▲ 소재 : 마블 외 ▲ 원산지 : 중국
▲ 상품 설명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상으로 사슴과 비둘기가 함께 있는 모습이 평소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 성인의 모습이 잘 표현 되었습니다. 수도복을 입고 계시며 수도복이 기존 성상들과는 다르게 옷 혹은 가죽 재질처럼 표현되게 특수 제작 되었습니다.
-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 알아보기 -
이탈리아 작은 도시 아씨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방탕하게 살던 어느 날 그는 어느 한센병 환자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사람에게로 가서 돈을 쥐어 주고는 평화의 입맞춤을 하였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서 이 만남을 가장 소중히 여겨 마음에 간직하였는데, 유언에서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하고 회상한다. 얼마 후 또 다른 만남이 그를 전적으로 변화시켰는데, 이번에는 낡고 반쯤은 버려진 아씨시 밑 쪽에 위치한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였다. 그 성당은 한 가난하고 늙은 신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신부는 너무 가난해서 십자가 앞에 불을 밝힐 기름을 살 돈도 없었다. 프란치스코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성당의 보수를 위해 아버지의 가게로 가서 값비싼 포목을 꺼내 가지고는 시장에 가서 죄다 팔았고 거기서 말도 팔았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번 돈을 그 성당의 신부에게 갖다 주기 위해 돌아왔는데, 그 신부는 그 돈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 대신 프란치스코에게 봉사자로서 교회에 봉사를 해주는 것은 허락해주었다. 이후 성당 수리를 위해 벽돌을 구걸하러 돌아다니고, 거지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돈을 주는 모습을 못 마땅해한 아버지가 그에게 상속권을 주지 않기 위해 재판을 열게 되었는데, 재판에서 프란치스코는 가지고 있는 돈을 아버지에게 돌려주라고 권유 받았고, 이에 프란치스코는 순명하여,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다 벗고는 옷들과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저는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려, 그 분을 하늘에 계신 저의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가난한 은수자의 옷을 입고 아씨시를 떠났다. 성년기에 아씨시로 되돌아와 구걸 행위를 통해 성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다른 성당들, 즉 성 베드로 성당과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 혹은 포르치운쿨라 성당을 수리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성흔(오상)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 십자가에 매달릴 때 입은 상처가 성인들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1224년 8월 15일부터 9월 29일 사이에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 산에서 단식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이 지난 9월 17일 프란치스코는 기도를 하던 도중 갑자기 십자가에 못박힌 세라핌을 목격하고 그리스도가 받은 다섯 상처를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똑같이 입었는데, 이것은 로마 가톨릭 최초로 공식 확인된 성흔이다. 하지만 성흔 현상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져 눈이 반쯤 멀었고 심한 병까지 얻었다.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에 관한 중세의 믿을 만한 사료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엘리야 총장의 회람편지, 토마스 첼라노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성 보나벤투라의 대전기 등).
1226년 10월 3일 토요일 해질 무렵에 프란치스코는 동료 수도자들에게 요한 복음서의 수난기를 읽어달라고 청하고 나서 시편 141편을 기도한 후에 “어느 누구도 죽음의 포옹에서 달아날 수 없습니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위키백과 >